High School Life

고교 학년부의 영어 원서 독서 활동

고딩길잡이 2023. 2. 23.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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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한참 블로그에 글을 쓸 때, 비슷한 포스팅을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영어를 잘하려면 뭘 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풀어나간 글이었죠.

그때는 정말 영어만 잘해도 먹고살 수 있다고 학생들에게 이야기하던 시절이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은 현실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영어말 잘해서 먹고살 수 있다는 말은 어쩌면 조금은 위험한 말이 아니었을까.

물론 아직도 한 과목만 아주 잘해도 생존에 지장은 없을 것 같습니다.

어느 분야든, 탑은 살아남는 법이니까요.

하지만,

시대별로 확실히 관심받는 과목, 분야는 계속해서 변합니다.

수능 절대평가와 고교학점제 시행 이후 줄어드는 학교의 영어 교과 수업 시수와 그에 따른 교과 정원 티오 감소를 보면 말이죠.

뭐 잡설은 이 정도로 하고,

그럼 제목처럼, 고등학교에서 영어 원서 활동을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면 좋은가, 그리고 그 효과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제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몇 년 전부터 학교 예산으로 분야별 원서를 구입해 두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소설부터 시작해서,

이제는 미국 유명 교과서 출판사에서 나오는 일부 고교 교과서에,

대학 교재로 활용되는 기본서까지

최대한 다양한 학생의 진로에 맞출 수 있도록 도서를 검색, 선정하고 구입해 두었습니다.

학년부 사업으로 진행한 것이라, 제가 있는 학년부 교무실에는 대략 100권 정도의 원서가 있고,

책장과 자리가 모자라서 영어전용교실에도 이번에 책장 두 개를 추가로 구입했고요.

다 합치면 200권 정도 됩니다.

앞으로 계속 늘려나갈 생각이고요.


그럼 이걸 가지고 이제 뭘 하느냐...

학생들은 연초 자신이 선택한 진로와 관련이 있는 영어 원서를 온라인에 올려둔 목록에서 선택합니다.

물론 온라인 도서 목록에는 원서의 저자와 분야를 제가 정리해 둔 상태죠.

특히, 소설도 사실 제가 예전에 읽었던 작가들의 소설인지라,

작가별 성향, 배경에 따라 등장인물들이나 주제를 특정 분야로 포함시켜 학생들에게 소개했습니다.

예를 들면,

존 그리샴 - 법정스릴러물

마이클 크라이튼 - 사이언스 픽션

로빈 쿡 - 의학스릴러물

스티븐 킹 - 미스터리/공포물

이런 식으로요.

그러니깐, 법률가가 되고 싶은 학생에게는 존 그리샴의 소설을, 과학자가 되고 싶은 학생에게는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을, 의사가 되고 싶은 학생에게는 로빈 쿡의 소설을, 문학이나 인문계열 학과로 진학하고 싶은 학생에게는 스티븐 킹이나 존 그리샴의 소설을 추천해 준다는 의미입니다.

아무래도 소설인지라 딱 맞아떨어진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일단 원서란 것이 소설을 읽기에는 그래도 관심 분야의 등장인물이나 주제가 나오는 것을 읽기가 조금 수월하거든요.

물론 원하는 학생의 경우 원서를 통해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조금 색다른 방식으로 복습하는 방향도 추구합니다.

생물 선택 학생은 생물 관련 교과서나 교재를 읽어보면 비교하면서 읽을 수 있겠죠.

도서 목록 스프레드시트


목록까지 완성한 상태로 학생들에게 공지를 하면 사전 작업은 끝나게 됩니다.

특정 시간에 구글 스프레드시트 링크를 공유해서 학생들이 자유롭게 고민하고 선택한 뒤,

다음 날, 학생들은 학년교무실에 와서 선택한 도서를 대여합니다.

이날은 교무실 앞에 많으면 50명의 학생들이 줄을 서서 책을 받아가는 진풍경이 펼쳐지죠.
(학년 교무실에 일이 바쁜 날을 피해서 잡습니다)

그리고 이제 남은 건, 학생들이 열심히 원서를 읽기를 기도하는 일입니다.


자, 고등학교에서 각종 활동을 만드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1. 활동을 통한 학생들의 성장(학업적, 정서적, 기타 등등 뭐든지)
  2. 생활기록부 작성 근거 마련

이유 중 두 번째, 생활기록부 작성 근거 마련을 위해서는 보고서를 수합해야 합니다.

저는 이것도 구글을 조금 활용했어요.

스프레드시트로는 목록 공개와 도서 신청,

그리고 구글 설문지(나중에 스프레드시트로 변환 가능)로는 보고서 수합을 합니다.

주 1회, 학생들은 주말을 활용하여 자신이 읽은 도서의 정보와 주제, 줄거리, 배운 점과 느낀 점을 작성, 제출합니다.

학생 보고서 수합 자료


위 사진처럼 모든 학생이 매 회차 보고서를 열심히 작성하는 건 아닙니다.

모든 학생이 영어 원서를 아무런 지도 없이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저런 식으로 연간, 또는 학기 동안 결과보고서가 쌓이면, 나중에 생활기록부 작성에 있어 큰 역할을 할 수 있죠.

그리고 학생들에게 수준이 너무 높은 원서가 아니냐는 고민도 있었습니다.

이건 이 활동을 시작할 때 영어과에서도 나왔던 이야기였고요.

솔직히, 제가 생각해도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쉽사리 진행할 수 있는 활동은 아닙니다.

학생에 따라 다르지만, 결국 1년 동안 10페이지 정도밖에 못 읽은 학생도 있었고,

활동 중간에 도서를 바꿔 신청한 학생은 엄청나게 많았으며,

결과보고서 제출을 포기한 학생도 있었으니까요.

그렇다 하더라도, 학생들에게 책을 읽히고, 그것도 영어로 된 것을 읽도록 시도하게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전 몇 년 동안은 쉬는 시간과 자습 시간에 국어와 수학을 풀거나 읽는 학생은 많으나,

영어를 공부하는 학생은 꾸준히 줄어와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는데,

이 활동을 시작한 뒤로 영어를 공부하는 학생이 눈에 띄게 들었습니다.

원서를 읽다 보니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느끼고, 더 읽고 싶은데 못 읽으니 영어 공부로 방향을 잡은 것이죠.

거기에, 잘 읽고 결과보고서를 잘 제출한 학생들은 만약 이 활동이 없었더라면 절대로 시도하지 않았을 영어 원서 읽기를 경험할 수 있었고요.


자, 그럼 저 결과보고서를 갖고 생기부에 어떤 내용이 들어가느냐...

... 끙... 공개하고 싶지만, 이미 생활기록부에 들어간 내용이라 공개하기가 어려운 점 이해 부탁드립니다.

기본적인 틀은,

학년교육계획에 의거하여 진행된 영어원서읽기 OO 활동에 자신의 진로인 CC에 맞게 AA라는 책을 선정하여 참여함. 00페이지에서 00페이지까지 읽고, 그것에 대한 인상적인 줄거리를 DD의 내용으로 정리, CC가 되기를 희망하는 내용과 연관 지어 DD의 주제를 인터넷과 다른 책 EE를 통해 학습, 정리하여 활동 참여 학우들 앞에서 발표함. 독서 활동 중 전문적인 영어 단어, 생소한 어법과 관용표현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내용적인 부분에 흥미가 있어 단어를 찾고 세부 표현을 구글 관용어 사전 등을 활용해 독서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고 함. 독서 후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향후 FF주제에 대해 탐구하고 싶다고 하였으며, 이에 대한 영어 원서 GG를 직접 인터넷을 통해 검색하여 내년도 도서 구입 신청을 해달라고 하는 등, 본 활동에 적극성을 갖고 자신의 성장을 위해 노력함.

 

이런 식으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위의 틀대로 쓰는 건 아니고, 지금 당장 조금 적어봤네요.

당연히 저것대로 들어가면 양이 너무 많습니다.

학생의 결과 보고서 내용이 별로면 저것보다 쓸 내용이 줄어들고요.

경우에 따라 넘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보통 진로 특기사항이나 자율 특기사항에 들어가게 되는데,

각 1500바이트는 큰 활동이 몇 개 있는 경우 칸이 부족합니다.

어쨌든 내용에 따라 빼도 될 부분은 빼고 적다 보면,

학생의 생기부 자율활동 특기사항, 진로활동 특기사항에 꽤 있어 보이는, 진정성 있는 내용이 들어가죠.


이 활동은 갑작스럽게 재작년 학년부를 처음 맡았을 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학년기획으로 구상을 해놓고 계획에 넣어두었는데, 진행을 하다 보니 개선사항이 매년 새로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아직 완성된 활동이라고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첫 해(2021학년도)는 도서 선정과 구입,

두 번째 해(2022학년도)는 도서 추가 선정과 구입, 활동 계획의 정교화,

올해(2023학년도)에는 활동 대상 학생 확대를 목표로 삼을 예정입니다.

연평균 30명 정도의 학생이 생기부에 이 활동에 참여하고 독서를 했으며 생기부에 자신의 활동 내용을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올해는 목표치로 최소 50명 이상!

이것만 진행되는 건 아니기에 목표를 그렇게 잡고 진행하려고 해요.


효과는 확실합니다.

영어 원서를 통한 영어 학업의욕 증진을 노릴 수 있고,

실제로 영어 모의고사 성적도 다른 때에 비해 아직 잘 유지 중입니다.
(보통은... 1학년에서 2학년, 2학년에서 3학년 올라갈 때마다 영어 성적이 확확 꺾입니다 ㅠㅠ)

또한 매년 고민되는 생기부 자율특기사항에 넣을 수 있는 근거자료도 만들 수 있고요.

거기에 추가적으로,

영어를 통한 교과 학습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이게 사실 가장 큰 목적입니다)

처음에는 막막하고 어려워하는 학생들이 많았으나,

이제는 활동 언제 시작하냐고 묻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상당히 뿌듯해요.


야심 차게 준비한 활동으로 학생들이 성장하고 결과물을 만드는 모습을 보는 일은 즐겁습니다.

성장이란 것은 결국 지금보다 더 힘든 일을 겪고 난 뒤 일어나는 일인데,

항상 학생의 수준에 맞춰 활동 수준을 낮춘다면 성장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학생의 변화를 바란다면, 학교의 활동이 먼저 변하고 난 뒤 적극적으로 독려하는 과정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행한 활동이고,

앞으로 계속 개선하면서,

새로운 활동도 구상할 생각입니다.


오늘 이야기는 왠지 갑작스럽게 끝나는 것 같네요.

뭐, 항상 그럴 예정이지만,

즐겁게 봐주셨으면 감사드립니다.
(업무인데 즐거울 리 없으시겠지만요 ㅠㅠ)

어차피 할 일이고,

어차피 내 일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진정성 있는 활동으로 학생의 성장을 노릴 수 있는 활동!

영어원서읽기 어떠신가요?

뻔한 활동이지만,

어떻게 계획하고 운영하고 독려하냐에 따라 결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블로그 리뉴얼 후 처음 올리는 학교 활동 내용 포스팅이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고딩길잡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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